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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브랜드 History

전설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by mignon-jy 2023. 5. 4.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2023 멧 갈라 의 테마였던 칼 라거펠트는 패션계의 거장이자 전설이었습니다. 

그는 샤넬, 펜디, 클로에 등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로 활약하면서 현대 하이패션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독특한 스타일과 색깔 있는 어록으로도 유명했으며,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인 칼 라거펠트도 성공적으로 운영했습니다.

 

 

생애

 

 

 

칼 라거펠트는 1933년 9월 10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패션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20살 때 파리로 이주하면서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1954년에는 프랑스의 명문 패션 학교인 파리 의상조합학교에 입학하고,

인 디자이너 경연대회에서 울코트부문 1등 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습니다.

그 후에는 발망, 쟝 파투, 마리오 발렌티노 등 유명한 패션 하우스에서 일했습니다. 

1964년에는 프랑스 브랜드 클로에의 수석 디자이너가 되었고, 

1965년부터는 이탈리아 브랜드 펜디의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에프’(F) 두 개를 겹쳐 만든 펜디의 로고는 그와 펜디 가문의 운영진이 디자인한 것입니다.


1983년에는 샤넬의 아트 디렉터로 부임하면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샤넬의 창립자 가브리엘 샤넬이 사망한 후 침체를 겪던 브랜드를 부활시키고 혁신적인 스타일로 변화시켰습니다. 

샤넬의 트레이드마크인 C 로고를 의상이나 가방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그였습니다.

1984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인 칼 라거펠트를 설립했습니다. 

그는 샤넬과 펜디에서 절정의 감각을 발휘하면서도 자신의 브랜드에서도 다양한 콜라보레이션과 실험을 시도했습니다.

2019년 2월 19일, 프랑스 파리에서 췌장암으로 인해 향년 85세로 사망했습니다. 

 

 

칼 라거펠트의 펜디

 


칼 라거펠트는 1965년 펜디(Fendi)에서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라거펠트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기 전이었지만, 

그는 그 당시부터 자신만의 독창적인 디자인과 세련된 감각으로 펜디의 패션 컬렉션을 선보이며 전 세계의 패션 업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는 펜디에서 약 54년간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펜디의 발전과 성장에 많은 공헌을 하였습니다. 

그는 펜디의 전통적인 무늬와 소재를 새롭고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며, 

펜디의 패션 디자인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펜디의 가죽 제품 라인에 있어서는 그가 지휘한 시대가 펜디 가방의 인기와 판매량을 대폭 끌어올린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펜디의 여성용 가방 "바그 에트루스코(Baguette)"를 선보이며 히트 아이템으로 만들어 냈으며, 

펜디의 여성용 가방이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칼 라거펠트가 펜디에서 한 업적은, 패션 브랜드가 선보이는 컬렉션뿐만 아니라 브랜드의 시각적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일에도 큰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는 펜디의 브랜드 로고를 새롭게 디자인하였으며, 이는 현재까지 펜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로 자리 잡아있는 디자인 중 하나입니다.

또한 펜디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존중과 그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능력을 갖추었으며,

그 결과 펜디는 오랫동안 그를 비롯한 디자이너들의 능력과 업적에 큰 기여를 받아 지금까지도 패션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칼 라거펠트의 샤넬

 

 


그의 대표작 중 하나는 샤넬 브랜드에 대한 재탄생입니다.

칼 라거펠트는 1983년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으며, 2019년까지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로 활동했습니다. 

그 시기 샤넬은 쇠퇴하고 있었지만 그는 샤넬의 창립자인 가브리엘 샤넬의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표현했습니다.

그는 브랜드의 고유한 스타일과 역사를 유지하면서도 전통과 혁신, 고전과 현대, 우아함과 세련됨을 조화롭게 담아냈습니다.

샤넬의 상징적인 요소들을 재해석하고 변형하여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냈습니다.

예를 들어, 트위드 재킷, 펄 목걸이, 카멜리아 꽃, 블랙 드레스 등은 그의 손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재탄생했습니다.

또한 샤넬의 의상에 현대적인 소재와 기술을 접목시켜 시대적인 감각을 더했습니다.

그는 샤넬의 패션쇼를 위해 매번 화려하고 독특한 무대를 세웠습니다. 

에펠탑, 로켓, 비치, 슈퍼마켓 등을 모방하여 패션쇼의 장소로 만들고 유명한 모델들과 배우들을 샤넬의 앰배서더로 선정하여 샤넬의 이미지를 강화했습니다.

칼 라거펠트는 샤넬의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창조력과 비전을 발휘하여 샤넬을 세계적인 패션 하우스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샤넬의 정신을 현대에 맞게 재정립하고 후세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칼 라거펠트 디자인의 특징

 

칼 라거펠트는 또한 화려한 쇼를 연출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쇼에 참여하는 인물들을 미술 작품처럼 배치하고, 화려한 무대와 음악을 통해 패션쇼를 현대적인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그의 패션쇼는 패션계뿐만 아니라 예술계에서도 큰 주목을 받으며,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의 디자인 스타일은 극적이면서도 세련된 것으로 유명합니다.

파리 패션계에서 "디자인의 교환이자, 비주얼 디자인의 매직"이라고 불리는 대담한 디자인으로 유명했습니다.

그의 디자인은 선명한 색상과 굵은 라인, 극적인 디테일과 볼륨감 있는 디자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한 칼 라거펠트는 혁신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는 디자이너로서, 기존의 패션 디자인 패러다임을 깨뜨리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청바지를 여성복으로 선보인 최초의 디자이너 중 한 명입니다.

또한 그는 쇼츠와 슬랙스를 여성복으로 소개하는 등 패션의 장르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하였습니다.

 

또한 패션 브랜드의 시각적 아이덴티티와 브랜드 마케팅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샤넬 브랜드의 아이콘이 되는 새로운 로고를 만드는 등 브랜드의 이미지 형성을 위한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왔습니다.

 

 

 

예술가 칼 라거펠트

 

 

 

칼 라거펠트는 디자인과 예술, 모델링, 연기, 음악 등 다방면에서 활약했습니다.

 

샤넬에서 내놓은 제품들은 상상 이상으로 기발했습니다.

예를 들어, 옷을 만들 때 콘크리트를 박아 넣어 예상치 못한 패턴을 짜 넣는다던가,

14FW컬렉션에는 종이용기에 가방을 넣고 랩핑을 해서 마트 정육점에서 산 고기 1팩을 연상시키는 가방까지 내놓았습니다.

또, 레스토랑 메뉴판을 클러치백으로 내놓는 등 독특한 제품을 선보였습니다.

 

고령이 되어도 샤넬의 광고 캠페인을 본인이 직접 촬영하기도 했고

LVMH사 아르노 회장의 딸이 결혼할 때 사진사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샤넬을 주제로 한 단편영화를 만들었으며, 그 영화는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또한, 아우디와 매그넘(아이스크림) 등의 광고를 기획하여 성공적으로 선보였습니다.

 

칼 라거펠트는 다채로운 패션쇼를 연출하는데도 능숙했는데, 단순한 무대를 우아한 해변이나 우주 정거장 등의 파격적인 콘셉트로 꾸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러한 적극적인 연출 덕분에, 그가 연출한 패션쇼는 대단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또한, 그림과 사진에 대해서도 대단한 재능을 보여주었습니다.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이를 작품으로 표현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감성을 잘 전달하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으며, 수많은 패션쇼와 전시회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업적은 패션 분야에서만이 아니라, 예술 전반에 걸쳐 인정받았고, 그의 작품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패션계의 거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칼 라거펠트는 전설적인 디자이너로, 패션 디자인과 관련한 많은 일들을 해왔습니다. 

 

 

 

여담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 DDP에서

2015/2016 샤넬 크루즈 컬렉션을 진행했는데,

당시 한복을 재해석한 쇼피스가 대거 등장해 화재가 되었습니다.

색동과 조각보를 연상시키는 패치워크, 한복의 실루엣을 반영한 둥근 어깨라인과 스커트, 가채를 응용한 헤어 등 한국의 전통을 반영한 의상들이 가득했습니다.

칼 라거펠트는 "전통과 첨단 기술이 공존하는 서울은 다이내믹하고 창조적인 도시"라는 설명과 함께,

"사람들이 중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많이 모르는 것 같은데 그 점이 좋은 아이디어가 됐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당시 반응은 어색함과 반가움이 함께 엇갈렸지만, 지금에 와서는 칼 라거펠트의 선구안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칼 라거펠트가 사망한 후 그의 반려묘가 유산상속자에 포함된 것도 화재가 되었습니다.

법적으로는 상속이 안되지만 신탁에 맡기는 방식으로 라거펠트 사후에도 기존의 생활을 유지하며, 전속 경호원과 하인도 있다고 합니다.

 

 

칼 라거펠트는 분야를 가리지 않는 독서를 즐겼고 그의 저택에 도서관을 두고 서점을 개점하기도 하였습니다.

2010년에는 자신의 고향인 독일에서 출판사를 설립하여 수많은 독일어 서적을 출판해 독일 문학과 철학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