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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브랜드 History

패션계의 거장 크리스찬 디올과 브랜드 이야기 뉴진스 해린의 앰버서더 발탁

by mignon-jy 2023. 5. 6.

K-POP 걸그룹 뉴진스의 해린이 디올의 앰버서더로 발탁되어 화재입니다.

그 소식과 함께 디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걸그룹 뉴진스(NewJeans) 멤버 해린이 디올의 주얼리, 패션, 뷰티 3개 부문 앰버서더로 동시 발탁되었습니다.

소속사 어도어(ADOR)에 따르면 뉴진스 해린은 디올 주얼리의 글로벌 앰버서더로, 디올 패션과 뷰티 부문의 하우스 앰버서더로 활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함께 해린과 디올이 함께한 패션 매거진 ‘보그’의 디지털 화보도 공개되었습니다.

디올의 앰버서더로 활동하게 된 해린은 블랙핑크 지수, 방탄소년단 지민 등 초특급 선배들과 함께 ‘디올의 얼굴’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패션 디자이너 크리스찬 디올과 그의 브랜드

 

 

 

 

크리스찬 디올은 20세기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그는 1947년 '신의 날' 쇼에서 디올 뉴룩(New Look)을 선보이며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디올을 창업했습니다. 

그의 뉴룩은 기존의 강경하고 집안 노비 같은 여성상을 깨부수고 여성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키는 스타일로, 디올 브랜드의 상징적인 스타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크리스찬 디올은 젊은 시절부터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꿈을 키웠습니다. 

그는 그 당시 핫했던 브랜드인 로베르 피게(Robert Piguet)에서 일하며 디자인에 대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 후에는 더 나아가 베르사유(Balmain)에서 일하며 성공적인 디자이너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병역 의무를 이행하게 되었고, 전투 중 다쳐 병원 생활을 하면서도 디자인에 대한 열정은 지속되었습니다. 

전쟁 후, 그는 1946년에 자신의 패션 브랜드를 창업하였으며, 그 해 1947년에는 뉴룩을 선보이며 패션계에 대한 큰 파장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크리스찬 디올은 디자인에 대한 열정뿐만 아니라, 미적 감각과 예술적 재능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디자인을 자신의 예술 작품으로 여겨,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만들며 디자인에 반영하는 등 예술과 패션을 융합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디자인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으며, 디자인을 완성하는 과정에서도 섬세한 손길과 디테일을 중요시했습니다.

 

 


크리스찬 디올은 1957년 5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지만, 그가 남긴 디올 브랜드는 그의 스타일과 철학을 계승하며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의 사후에도 디올 브랜드는 저명한 디자이너들과 함께 발전해 왔으며, 현재는 다양한 제품 라인과 전 세계적인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크리스찬 디올은 패션에 대한 열정과 미적 감각으로 인해 패션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의 디자인 스타일은 여성들에게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부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며, 뉴룩 스타일을 통해 기존의 여성상을 깨부숴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패션 디자인은 여성의 몸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이는 그가 여성의 아름다움을 부각하는 디자인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크리스찬 디올의 브랜드는 그가 남긴 가치와 철학을 계승하여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현재 디올 브랜드는 의류뿐만 아니라 가방, 신발, 액세서리 등 다양한 제품 라인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 각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크리스찬 디올의 컬렉션은 그가 1947년에 선보인 첫 컬렉션인 'New Look'을 비롯하여, 이후 다양한 시즌과 주제를 통해 매우 성공적으로 발표되었습니다.

디올의 디자인은 항상 우아하면서도 현대적인 스타일로 여성들을 매료시켰습니다.

그의 디자인은 세부적인 디테일과 고급스러운 소재를 통해 완벽한 피팅감과 아름다움을 표현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의 컬렉션을 준비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습니다. 
그의 컬렉션은 전체적으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구성되며, 디자이너 자신의 이야기나 감정이 담긴 요소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그의 1953년 'H-Line' 컬렉션은 디올이 인상 깊게 본 한 회화의 선과 형태를 반영한 것입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출신지인 그랑빌에 대한 동경과 그림 같은 아름다움을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디올 브랜드는 늘 혁신적인 시도를 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디올의 전통적인 체크 패턴인 'Oblique' 패턴을 활용한 제품들이 최근 다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적인 패턴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것은 브랜드의 이미지를 새롭게 유지하면서도 전통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또한, 디올 브랜드는 다양한 아티스트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디올은 캔버스에 예술 작품을 그리는 예술가 로즈베리와 협업하여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브랜드의 이미지를 대중적이면서도 예술적으로 높인 것입니다.

이러한 다양한 노력과 시도로 인해 디올 브랜드는 오랫동안 꾸준한 인기를 누리며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가 남긴 뉴룩 스타일과 철학은 현재까지도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그의 영향력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크리스찬 디올은 전설적인 디자이너 중 하나이며, 디올 브랜드는 패션계를 대표하는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디올의 역대 디자이너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 

디올의 창립자이자 첫 번째 디자이너로, 1947년에 뉴룩(New Look)을 선보여 패션 역사에 큰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향수, 화장품, 기성복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으나 1957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디올의 제자이자 두 번째 디자이너로, 21세의 나이로 디올의 후임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사다리꼴 모양의 트라페즈(Trapeze) 라인을 선보였으나 1960년에 군 복무 문제로 디올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마크 보앙(Marc Bohan):

세 번째 디자이너로, 단순하고 우아한 스타일을 추구했습니다.

오블리크(Obligue) 패턴과 CD 다이아몬드 패턴을 만들었으며, 남성 컬렉션과 여성 기성복 라인을 런칭했습니다.

디올에서 가장 오래 일한 디자이너입니다.


잔 프랑코 페레(Gianfranco Ferre):

네 번째 디자이너로, 첫 번째 외국인 디자이너입니다.

건축학 전공을 살려 구조적이고 현대적인 스타일을 선보였습니다.

1996년에 디올이 LVMH 그룹에 들어가면서 계약종료 되었습니다.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

다섯 번째 디자이너로, 창조적이고 화려하고 감각적인 스타일을 추구했습니다.

신문지를 차용한 옷이나 길거리 노숙자를 모티브로 한 옷 등 파격적인 컬렉션으로 유명합니다.

2011년에 유대인을 비하하는 발언으로 계약해지 되었습니다.


라프 시몬스(Raf Simons):

여섯 번째 디자이너로, 미니멀리즘을 지향했습니다.

기존의 디올 스타일과 잘 조화된 컬렉션을 선보였으나 2015년에 자진 퇴사하였습니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Maria Grazia Chiuri):

일곱 번째 디자이너로, 첫 번째 여성 디자이너입니다.

페미니즘과 청춘 문화를 반영한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습니다.